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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의 희열 인요한 구급차 선교사의 후예
    Commercial Media 2018.09.30 08:38

    전라남도 순천에 태어났으나 그의 아버지는 영국 켈트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인디언입니다. 즉 영국 켈트족이 인디언을 만나서 순천에서 아이를 태어나게 했으니 그가 바로 인요한입니다. 우리나라 많은 역사적 현장에서 삶을 살았던 인요한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으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추방되었다가 광복이 있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우리나라에서 학교의 교장도 되고 의료센터도 지원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로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노예가 있었고 일제 시대에는 신사 참배가 있었으며 한국전쟁 즉 북한의 남침으로 이뤄진 동란으로 말미암아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 실시간적으로 일어나는 나라였으며 국가 주의 즉 군부독재 기간 동안에 이뤄진 광주 항쟁 그리고 1987의 6월 항쟁까지 그 모든 순간에 우리나라는 변화가 있었으며 그 변화의 한 가운데에 바로 인요한이 있었습니다.
         

     

     


    그가 구급차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던 사실도 엄청나게 유명합니다. 1993년도에 우리나라에 구급차가 처음 생겨난 것도 기가찰 일이기도 하지만 그 구급차를 만들기 위해서 그가 직접 움직였다라는 것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매번 노력을 하였고 그 노력이 가치가 없게 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즉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우리나라 선교를 위해서 애를 쓰고 학교를 세우고 의료센터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아들인 인요한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광주 항쟁의 통역가가 되기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하였으며 구급차를 만들고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심지어 - 남북관계 해소를 위해서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보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시사 예능 판도라에서도 비상대책위의 대표로 인요한을 추천할 정도로 신망이 두텁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를 보수가 품기에는 그의 마음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북한을 품을 수 있고 광주항쟁의 당사자들을 품을 수 있었으며 기무사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를 잘 품을 수만 있었다면 보수 진영의 외연은 좀더 확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의 이미지만 이용해 먹었고 그와 함께 북한과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국정 농단과 적폐를 일삼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새누리당 즉 자유한국당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북한과 관련해서 인요한이 말한 것은 북쪽에 남한에 있는 사람이 있네라는 말 하나로 응축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을 구급차와 각종 의료 서비스로 도왔던 인요한은 북한도 같은 마음으로 돕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 그는 중간에 다른 색깔의 이방인이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 모여서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의 형인 유진벨 재단의 대표는 인요한에게 자신들은 북한에 의료 물품을 전달하는 당나귀에 지나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눈의 색깔이 다른 이방인들의 고마움을 우리는 지금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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