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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초월스님 태극기 처절함 느꼈던 이유
    Commercial Media 2019.08.18 20:08

    같이 펀딩이 오늘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준상이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나왔는데 그는 설민석 강사를 만나 진관사 초월스님과 태극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시다시피 유준상은 그가 나온 예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태극기에 대한 사랑이 특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결혼식을 삼일절에 했고 결혼식장에 거대한 태극기를 걸어놓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마저 임시정부가 있는 곳으로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태극기함을 만들기 이전에 태극기에 대한 울컥한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관사의 초월스님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설민석 강사는 해주고 싶었지만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다 불타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진관사에 칠성각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쪽에 보수 공사를 하면서 벽을 뜯었는데 그 안에서 보따리가 하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 보따리를 풀어보았더니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기록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독립신문과 일제에 대한 경고문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보따리 즉 보자기가 바로 태극기였습니다. 또한 그 태극기를 그리기 위해서 일장기를 가져다가 그것에 파란색 박음질을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독립에 대한 의지가 그 누구보다도 강했던 진관사 초월스님의 결의를 느끼게 하는 태극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관사 초월스님은 안타깝게도 광복이 되기 한 해 전 1944년에 돌아가시게 되었고 결국 광복을 죽음 이후에 맛보게 되었습니다. 유준상, 장도연 그리고 유인나는 진관사 초월스님이 얼마나 태극기를 사랑하였는지 그리고 그 태극기를 간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고를 보이셨는지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진관사 초월스님은 처절한 독립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일본은 일제 강점기의 그들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에게 오히려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일본은 경제 침략을 단행하였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일대오를 형성하여 독립운동은 할 수 없어도 불매 운동은 한다는 마음으로 일본에 강력히 우리의 의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919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00년 전에 만세 운동을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에 결의를 보였습니다.
         

     


    삼일운동 100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경제 침략에 대항하여 불매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이 굴복할 때까지,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경제 침략을 멈출 때까지 독립운동은 못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결의에 차 있습니다. 진관사 초월스님은 비록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그분이 소중히 여긴 태극기는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초월스님의 소중한 마음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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