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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정도 목사 걸레 성자, 김일성과 밀접했던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4.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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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오늘 방송이 되었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때 과거에는 크리스마스의 유래나 성탄절과 관련된 여러 다큐들을 방송하곤 하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기독교 혹은 가톨릭계에 있는 우리나라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우리나라를 빛냈던 사람들 혹은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 또한 같은 의도로 이번에 방송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손정도 목사는 1882년 평북 강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숭실중학교를 다니면서 평양에서 일어난 평양대부흥을 체험하였고 그로 인해서 바로 신학의 길로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선교사로 파송이 되어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도중에 일제에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혀 증거가 없었지만 그러나 일제는 그를 모진 학대 속에 집어넣었고 결국 전라남도 진도로 1년 동안 유배를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을 하여 임시정부 의정원의 의장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 활동을 하였지만 그러나 그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숨어서 돕는 쪽을 선택하였습니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는 것, 비단이 되기보다는 걸레가 되는 것으로 더 국가를 위해서 더 남을 위해서 그는 희생을 하였습니다.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는 중국 지린성 지린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도산 안창호 선생과 함께 농민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서 마을이 소실되었고 그 이후에 그는 결국 일제의 칼날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50이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와 북한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목사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북한에서도 기념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걸레 성자 손정도 목사가 죽은 이후에 우리나라는 분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정도의 큰 아들인 손원일은 해군제독이 되었고 작은 아들 손원태는 미국 유학 이후 재미교포로 의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손정도 목사가 양자처럼 키웠고 후원했던 소년 김성주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손정도 목사의 큰아들 손원일 제독은 서울 현충원에 묻혀 있으며 작은 아들 손원태는 평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손정도 목사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손정도 목사가 걸레 성자로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측면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의 양아들이 바로 김일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추모를 하기에는 손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손정도 목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희생했는지를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잊으려고 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해야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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