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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상 뉴스룸 주홍빛 낙인이 안타깝다
    카테고리 없음 2018. 3. 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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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이자 작곡가 그리고 프로듀서인 윤상은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끔씩 예능에도 나오는 아저씨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이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있을 예술단 평양공연 실무접촉 수석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정인, 서현, 알리,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예술공연에 참여할 가수들을 대중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방자경 보수성향 학부모 단체 대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은 윤이상을 비롯하여 윤기권, 윤상원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윤상이 그들과 성이 같기에 윤상도 북한과 가까운 사람이며 그를 선택한 지금의 정부가 북한 찬양 집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한 그의 트윗에 작곡가 김형석은 윤상의 성이 이씨라고 정정해주었습니다. 원래 윤상의 이름은 이윤상이었으나 윤상이 데뷔를 하던 때에 있었던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여파가 있었기 때문에 윤상이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한 것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의 히틀러는 유태인들과 집시들 수백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친위대가 죽일 때에 단지 독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사람들이 그들의 학살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들이 유태인들과 집시들을 죽였던 이유는 자신들의 모든 불행이 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와 군대가 그들을 옥죄어서 그들이 유태인들을 학살하는데 동참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생각없는 동조는 민족을 말살시킬 정도로 엄혹합니다.
           

     

      


    1950년대 미국에는 메카시즘이라는 광풍이 불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무력은 상당히 과대평가된 면이 많았었고 그로 인해서 미국은 소련으로 인해서 자신들이 멸망할까봐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있어서 미국 내의 공산당 혹은 사회주의자들은 소련에 동조하는 부역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국 내에 있는 소련의 부역자들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소련의 스파이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핍박을 받고 압박을 받으며 희생양으로 떨어졌던 많은 사람들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라는 강대한 적 앞에서 희생양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의 비극은 모든 사람의 비극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북한 공산당으로 인해서 지난 70년 전 전쟁의 참화를 겪었으며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북한으로 얻은 피해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군부 세력들 그리고 보수 세력들은 북한의 동조자인 사람들을 당연히 잡아 가두었지만 단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그들도 제대로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잡아 가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아직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으며 지금도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낙인을 찍어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방자경 같은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그들의 성향이 어떠하든 대중이 분노할 수 있는 딱지를 붙이며 낙인을 찍어서 사회 활동을 못하게 합니다. 빨갱이라는 말이 아직도 먹히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아직도 북한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공포가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입니다. 윤상의 이름이 이윤상이라고 밝혀져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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