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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남 항소심 무죄 가치는 지속적으로 달라진다
    Current Commentary 2018.08.17 17:38

    그림 대작 혐의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영남은 오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지난 해 10월 1심 재판부는 논란이 된 작품을 그린 사람이 조수에 불과했다고 보기에는 힘들었기에 유죄를 선언하였다고 한다면 오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게 됩니다. 당연히 상고를 할 것이 분명하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조영남이 대작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묻는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경계를 법원이 정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기술이 계속 변해가면서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일어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고대 시대에는 책 한 권을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책이 아닌 전자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책을 한 권 얻기 위해서는 원래 있던 책을 필사해서 즉 직접 글로 써서 받아봐야 했다면 지금은 컴퓨터에서 클릭 한 번 만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으며 구입된 전자책에 자유롭게 글을 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조영남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의 이혼과 그 이후의 이성 문제에 대해서 대중의 평판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종 설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를 싫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를 대작 혐의로 비난을 하고 그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가 자신의 그림을 산 소비자에게 그림을 그린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부분은 있지만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기가 오히려 지금 시대는 지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예술계는 그림을 잘 그렸다고 그 사람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사람의 창의적인 부분이 얼마나 그림 속에 녹아져 들어가 있느냐를 보는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조영남과 같은 화가가 그 안에 창의성을 집어넣었다고 한다면 그 때부터는 조수의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영남의 그림이 되는 것이며 그 가치는 결국 조영남의 창의성에 의거해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조영남의 그림을 사는 사람은 단 두 가지를 보고 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가지는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라고 하는 믿음 그리고 두 번째는 조영남의 이름값입니다. 즉 조영남이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가 아무리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혹은 그가 창의성을 가지고 그림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바꿔 말한다면 사람들은 결국 조영남이 그림을 잘 그렸는지 그리지 않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영남의 그림이냐 아니냐에 더 방점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항소심에서 조영남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가 된 것은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재판부가 조영남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의 세계 그림 즉 예술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것을 재판부가 인지하고 인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의고 공의이며 자신의 감성에 따라 세상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예술의 세계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는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과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예술은 다르고 그들의 영역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괴상망측할 수 있고 괴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러한 예술가들의 세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쿨하게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조영남이 그러한 사람들의 세계를 맛보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꼴사나워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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