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부상투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꼭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이러한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그 사람은 칭찬을 듣는 것이므로 겸양쩍어 하며 자신은 최선을 다하려고만 했다는 말을 해야만 합니다. 그 이후 부상투혼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그 사람이 출연한 작품 혹은 그 사람이 있는 단체는 같이 인기를 얻게 되고 인지도를 확보하게 됩니다. 화제성은 더할나위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마동석이라는 이름,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방송을 통해서 본다면 두 가지 언밸런스한 부분을 사람들이 느낄 것입니다. 그 육중한 근육질 몸매에서 나오는 폭력적 미학과 그 폭력적인 근육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그의 감성을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그가 과거 부산행이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더니 이번 범죄도시에서도 윤계상과 함께 타이틀 롤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동석이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인대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 상태에서 영화를 찍었고 그로 인해서 그에 대한 대중의 찬사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러한 그의 행동은 무모함 그 자체입니다. 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영화를 찍는 것은 그대로 멈추고 치료를 받게 됨으로 인해서 영화 스케줄 자체가 상당히 늦춰진다고 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을 먼저 확인해야 하며 부상의 정도를 병원에서 정밀한 검사를 통해서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몸이 강철같다 하더라도 그 몸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마동석이라 하더라도 아니 마동석일지라도 몸의 문제가 생기면, 부상이 생기면 바로 치료를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과 다르게 개인주의를 앞세우는 것보다는 집단주의를 앞세우는 것, 즉 개인의 위험, 개인의 문제를 먼저 따지기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먼저 따지는 것을 더욱 중요시여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개인의 희생은 계속극대화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극대화된 개인의 희생은 결국 모든 개인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동석 개인의 문제로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터프함은 이미지일 뿐입니다. 물론 터프함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작품 내에서 즉 영화나 드라마 내에서 내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터프함을 내보이는 것 이전에 모든 사람은 각각의 위험에 대해서 민감해야 하며 그 누구도 함부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을 부상의 위험 속에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대파열은 충분히 부상이 깊은 것입니다. 마동석이기에 그것을 참고 연기에 임했지만 그러나 마동석이기에 더욱더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집단의 일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당연시 여겨지는 지금의사회를 우리는 갱신해야 하며 개선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집단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다라고 이야기하는 사회에 살아가야만 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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