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가 웅앵웅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가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그는 자신의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인드를 대중에게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서 그는 많은 압박을 당할 수 있으며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그는 여러 부분에서 다르지만 분명히 유아인의 뒤를 잇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 발발하였을 때에 90만이 넘는 국민 청원 숫자로 말미암아 여성들의 인권과 관련하여 대중의 필요가 크구나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수역 폭행 사건의 원인이 뒤집어지고 쌍방 폭행이 되어버린 지금 오히려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에는 동력이 많이 떨어졌다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는 마치 미투운동의 동력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고 빚투 운동의 동력 또한 거의 사라지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수역 폭행 사건으로 인해서 대중이 알게 된 것은 처음 말한 사람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과 함께 언더독 효과 즉 약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무조건 피해자는 아니구나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마치 건물주와 세입자가 싸울 때에 세입자의 편을 드는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알고 보니 건물주가 피해자일 수도 있다 혹은 쌍방이 잘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90만의 화력 집중은 정치인들도 지켜볼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이기는 하지만 90만명을 움직인 것이 선동성 글 즉 확인되지 않은 글임이 밝혀진 것으로 인해서 동력이 끊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산이가 모든 페미니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는 쪽이 있다고 말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산이가 무조건 옳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유아인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낼 때에 그는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많은 지식인들이 한쪽 눈을 가린 채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유아인과 산이는 다른 쪽도 봐야 한다고, 다른 상황도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오히려 지식인들이 지식인답지 못하고 언론인이 언론인답지 못하며 정치인이 정치인답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줌을 알리고 있습니다.

       

  


유아인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산이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산의 웅앵웅 즉 산이의 실험이 처참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쪽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한 쪽이 무조건 선인 싸움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중에서 20대에서 남성의 지지율이 50대 남성의 지지율과 비슷할 정도로 약세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일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대통령도 그리고 참모도 한쪽의 의견만 듣다가 대의를 그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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