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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규 열사 변사사건 제보 필요한 이유
    Commercial Media 2019.10.20 07:32

    어제 방송이 된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89년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고 이철규 열사 변사사건에 대해서 조명하였습니다. 1989년 광주 제4수원지에서 고 이철규 열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가 심한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은 이철규가 새겨진 나무도장과 주민등록증이었습니다. 사인은 실족에 의한 익사라고 알려졌지만 그러나 사인을 정확히 알 수도 무엇이 이철규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고 이철규 열사는 당시 전남 학생운동권 리더이자 조선대 교지 편집장이었는데 교지에 북한 관련 글을 써 지명수배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고 이철규 열사가 검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혹시 경찰이 숨긴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의혹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고 이철규 열사는 수배 상황이었고 만약 그를 잡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1계급 특진에 현상금도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철규 열사의 선배인 양희승 씨는 그가 연행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대호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는 엄혹한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그 때 경찰이 좋았고 치안이 괜찮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말 그대로 경찰의 문제를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인해서 엄하게 잡혀서 경찰로 인해서 고초를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때 경찰은 과학 수사를 할 능력도 없었고 무조건 잡아야 한다라는 상부의 명령을 수행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능력도 없고 쪼임을 당하는 조직은 결국 하는 일은 다른 희생양을 찾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찰도 있는데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사건을 은폐하거나 살인을 숨기는 경찰 또한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군사정권이었고 국가가 국민을 옥죄고 있었던 때였기에 고 이철규 열사와 같은 사람들의 죽음을 숨기기에는 정말로 쉬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공안 수사의 경우 모든 것이 그들이 원하는대로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그들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은 피해자는 그대로 피해를 입고 사라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사 위원회가 필요하고 당시의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 이철규 열사의 수상한 죽음도 당연히 지금 다시 살펴봐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이철규 열사 변사 사건에 대해서 확인해보려고 해도 남아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제보입니다. 그 당시 이철규 열사의 죽음의 순간을 보았거나 혹은 끌려가는 순간을 보았다는 사실이 하나라도 있다고 한다면 그 때에는 다시 한 번 수사를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제보는 없고 이철규 열사 사건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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