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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회 압구정 영광과 쇠락을 같이한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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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선을 넘는 녀석들에는 한명회와 조선 최대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정자 압구정에 대해서 언급을 하였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장자방이라고 불렸는데 사실 그는 책략가라기보다는 보스형 기질이 가득한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수양대군이 왕이 되고 왕권이 강력해지자 그 안에서 엄청난 권력을 누리게 되는데 그 권력의 중심에 바로 압구정이 있었습니다.
          


    선을 넘는 녀석들에 나오는 슈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켰습니다. 김종수 황보인 등을 죽이고 단종을 보호하려고 하는 세력들 전부를 하룻밤만에 일소를 한 수양대군은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선 때부터 시작하여 단종을 시해하고 왕권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바로 한명회가 있었습니다. 한명회는 세조 때부터 시작하여 예종 그리고 성종 때까지 최고의 권력자로서 군림하였습니다.


        

    그러한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압구정입니다. 이 압구정이 얼마나 당대에 유명하였는가 하면은 명나라 대신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에 압구정에서 한 번 노는 것을 소원으로 여겼을 정도였습니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 그리고 성종 때까지 한명회는 각각 딸 둘을 왕비로 삼게 하고 권력을 계속 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권력에 집중을 하게 되면 결국 왕에게 미움을 사게 됩니다.
       

     

      

     


    특히나 압구정은 한명회의 영광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문제는 그러한 압구정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성종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입니다. 명나라 대신이 압구정에서 놀자고 하였는데 그것을 왕도 아닌 한명회가 손쉽게 거절한 것이나 왕실의 물품에 함부로 손을 댄 것까지 계속 선을 넘는 한명회를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성종은 한명회의 압구정을 봉쇄하였고 그 때에야 조선의 대신들은 한명회의 권력이 끝이 난 것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한명회가 졸할 당시 즉 죽음을 맞이할 때에는 그의 상갓집이 텅텅 비었을 정도로 권력에서 완전히 멀어져버렸고 한명회가 죽은 이후에 성종 아들 연산군은 한명회가 연산군 어머니의 죽음에 관여하였다는 빌미를 잡아서 한명회를 부관참시를 시켜버렸습니다. 한명회는 처음 시작 즉 수양대군과 함께 거사를 했을 때부터 성종 초기까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명회의 말년은 그의 압구정이 완벽히 허물어진 것처럼 권력에서 멀어지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명회는 그렇게 압구정과 함께 영광과 쇠락을 같이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영화 관상을 접목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명회의 일생 그리고 그 삶은 드라마틱하다라는 말을 그대로 넣어도 충분할 정도로 지금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대단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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