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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광수 교수 자살 애도가 필요하다
    Current Commentary 2017.09.05 16:37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었던 지난 세월 동안 마광수 교수는 언제나 대중의 관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관심에 중심에 서 있으려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추구하고 있는 작품 세계들, 그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해서 대중은 엄혹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연세대학교 교수이고 그에 따른 품위가 필요하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한 세상의 말에 저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그러한 저항에 대해서 국가가 단죄를 내리기도 하고 대중은 그러한 국가의 단죄에 환호를 하기도 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작품을 책으로 써내려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자유로움이 서 있을 곳은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조금은 애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소수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수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광수 교수가 더 이상 책을 내지 않고 세상은 마광수 교수가 말하는 세상보다도 더 이상하게 흘러갔기에 그에 대한 관심을 철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 대한 비난의 소리를 더욱 크게 키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저버렸다라는 소식에 그 사람들은 환호를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난, 그의 작품에 대한 엄혹한 눈길은 너무 잔혹한 잣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마광수 교수가 무조건 잘 했다라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의 난해함은 종종 말초적인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적인 사유보다는 그 안에 있는 상상력을 더 원했고 그 상상력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말초적인 그리고 정말로 자극적인 미디어 작품들은 대중의 실망을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사람들은 치열한 토론을 하기보다는 침을 뱉기에 바빴고 그가 은퇴를 하게 되자 그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려 했습니다.
       
    그를 비난하는 것, 그의 자살을 비난하는 것, 마광수라는 사람, 마광수 교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중이 평하는 것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잔인한 잣대를 들이밀 것이라는 것은 이미 죽고 사라진 그의 영혼, 그리고 껍데기만 남은 그의 육신은 굳이 신경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그가 우울증에 걸려 있고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치열하게 젊은 날에 고민했던 그 감성이 그 자신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외의 유수의 철학자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환호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고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 철학을 정말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들, 사람들 입맛에 맞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난하기에 힘쓰고 그러한 비난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외치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는 것에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애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광수 교수가 살아 생전에 사람들에게 불편한 자극을 주었다고 해서, 불편한 것을 생각나게 하고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고 숨기고 싶어하는 것을 밝히려고 해서 그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오늘만큼 그가 다시 자신의 껍질을 벗고 돌아간 바로 오늘만큼은 애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오늘 2017년 9월 5일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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