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좋다에 이상용이 출연하였습니다. 유명인은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유명인들은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그들을 질시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있는 사람이기에 도드라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인기를 끄는 사람들이기에 누명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막기에는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 뽀빠이 이상용도 그렇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1990년대 우정의 무대라고 한다면 군부대 입장에서는 최고의 퍼포먼스 중 하나였습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라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고 장병들이 가려진 곳에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자신의 엄마가 분명합니다라고 부르짖으며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같이 웃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우정의 무대에 엄마 얼굴 보고 싶다라는 노래와 장병들의 모습이 하나의 스틸컷처럼 남아 있다면 그 앞에 있는 이번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 이상용은 우정의 무대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그러한 이상용이 갑자기 대중의 지탄과 질타를 받게 되었습니다. 567명의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심장병 수술을 도왔던 그가 오히려 심장병 어린이 성금을 횡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1996년에 나온 이 보도는 이상용에게 대중이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이상용은 법적인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횡령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확인을 하기도 전에 이미 이상용은 죄인이 되어 있었고 그를 보호하지도 그를 이해하지도 않은 대중은 그를 이미 버러버렸습니다.
      

 

  


3개월만에 불기소 처리가 되어 얻게 된 불기소 확인증 그에게 남은 것은 그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이미 그의 이미지난 깨진지 오래 되었고 불기소 처리 즉 무혐의 처리가 되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믿지도 않았으며 방송국에서는 그를 써주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매장이 되었으며 유명인으로서의 삶 또한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정의 무대에 설 수 없었던 그는 완벽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가 설 땅이 없었습니다. 그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가서 가이드 일도 하면서 정말 이것 저것 무엇이든 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루 25000원 벌이인 비닐하우스 일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를 믿어주지 않는 대중, 그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불기소 확인증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 이상용은 자신의 과거를 담담히 설명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좋다 제작진에게 직접 보여준 불기소 확인증은 그가 얼마나 심장병 횡령 사건 누명에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사람들은 한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다고 언론의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정죄하고 봅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 죄를 지었는지 짓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기사에 나온 사람은 죄인이고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냐라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지만 그러나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람이 좋다에 출연한 이상용 또한 누명을 쓰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아직까지 그가 불기소 확인증을 들고 있는 이유는 그 피해를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은 무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이상용은 정말 힘들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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